안녕. 드디어 캐나다에 온 지 2주가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온 것 같은데 아직 2주다. 오늘은 아주 흡족한 일이 많았다. 일단 수업.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반을 바꾸길 진짜 잘했다. 억양이 센 영어도 집중해서 들으니까 금방 익숙해지는구나. 영어 공부를 그렇게 오래 했는데, 물론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 진짜 새삼 놀란다 이렇게 모르는 단어가 미친 듯이 많다니...
학원 끝나고 일본인 친구와 점심. 이제부터 이 친구를 か라고 부르겠다. 어디서 점심 먹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제안했다. 한 그릇이기는 하지만 가게 분위기가 혼밥하기 묘하게 어려운 분위기라서 누구랑 같이 먹을 때 냉큼 가야 함 ㅋㅋ 가게 이름은 Hokkaido Ramen Santouka. 나는 냉라멘 같은 것을 먹었는데 몹시 흡족했다. 파이브 가이즈 수준으로 흡족. 내 입맛에는 맞는데 か도 맛있어할까? 싶어서 슬쩍 보니까 엄청 잘 먹더라... 면은 조금 아쉽지만 국물은 일본에서 먹는 거랑 똑같대. 먹으면서 일본인이랑 한국인 만나면 하는 뻔한 얘기(양국의 드라마, 가수, 먹어본 음식, 이 단어 어떻게 발음해? 등)하는데 너무 웃겼다. 재밌는 이야기 진짜 많이 했는데 후술할 이벤트의 충격이 커서 까먹음.
원래 오늘은 <탈주>를 보려고 했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마켓에 포스터가 붙어있다는 이유로 토론토 아무 영화관에서나 상영하겠거니 한 나의 착각이었다. 시내 중심 영화관에서는 상영하지 않고, 외곽으로 약 10km 정도 나가야 볼 수 있더라. ㅠㅠ... 모처럼 외곽으로 나갈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근처 영화관의 상영 리스트에 Kinds of Kindness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것도 없는데) 도파민 팡팡. 더블더블 한 잔 사서 영화관까지 슬슬 걸어갔다.
영화를 예매하고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서 주변 구경했다. 여기는 제임스 성당 ㅎㅎ. 외관만 보고 지나갔었는데 내부는 처음 들어온다.
스테인드글라스 넘 예쁘다
옆에는 작은 기도실. 상반기에 종종 갔던 학관 뒤 기도실과 닮았다.
여기는 세인트 로렌스 마켓. 이렇게 동선에 자주 걸릴 줄 알았으면 저번에 여기를 목적으로 올 필요가 굳이 없었겠다 싶긴 하다. 오늘은 배가 너무 불러서 패스하지만, 다음에는 여기서 (인간들의 극찬이 자자한) 피시 앤 칩스를 먹어야겠다고 결심. 사진은 맛있어 보여서 찍었다. 하지만 비주얼에 속아 샀다가 후회한 디저트가 토론토에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왼쪽 구석의 딸기 데니쉬에는 진짜 흔들렸다.
발작 커피. 시간도 남았겠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당시 기준 더블더블 다 마신지 5분도 안 된 시점이기도 했고, 계획대로라면 아마 내일 발작 커피에 갈 것 같아서 인내함.
일본 느낌이 드는 편집샵. 딱히 예쁜 건 없었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Thrift store가 시내 곳곳에 유난히 많은 듯한 토론토. 재미는 딱히 없었다. 이걸 대체 누가 사나 싶은 것들이 좀 많았다.
메트로도 잠시 구경. 이제 슬슬 기념품 뭐 사갈지 고민되는 시기라, 차나 커피류를 유심히 보고 있긴 한데 썩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제 영화관 입성.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들. Arrival 왜 붙어 있을까? 재개봉? 영화관에서 개봉하면 보기 위해 OTT에서 안 보고 버티는 영화 중 하나라 눈길이 감. 두 번째 포스터는 위키드. 글린다 역을 맡은 아리의 연기가 너무너무 궁금하다. 한국 개봉은 올해 겨울이더라. 겨울 개봉!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지금 위키드 오리지널 공연하고 있던데, 그것도 좀 볼까 말까 고민 중... 진짜 한량 같은 고민이다...
오. 이런 예매창은 또 처음 본다...
드디어 예매한 Kinds of Kindness. 화요일은 단돈 5달러. 허걱... 다음 주에도 와야겠다. 온라인으로 예매하면 Tax도 안 붙는다.
영화관 분위기는 다소 낡은 느낌. 카펫 바닥, 약간 너저분한 매점, 어두컴컴한 조명.
상영관 앞에 붙어있는 표지판. 한 관에서 하나의 영화만 상영하는 것인지, 관마다 영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귀여워. 인사이드 아웃 2가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중에서는 가장 관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영화인 것 같다. 다른 영화관에도 상영관 엄청 잡혀 있더라.
아니, 그래서 입장했는데, 리클라이너 상태가 너무 좋음... 캐나다에서 유명한 cineplex가 아니라 좀 마이너한 영화관이라서 솔직히 관 시설 기대 안 했고 아까 사진에서 보다시피 로비도 좀 올드해서 그냥저냥 영화관인가 했는데 허걱 쏘 굿.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도 어지간한 동네 CGV보다 라이카가 시설 더 좋잖아. 약간 그런 느낌인 것 같다 ㅋㅋ..
기다리면서 광고 봤는데 재밌어보이는 영화가 너무 많았다. 조커 폴리아되 예고편 나와서 마음이 너무 설렜다. 보고 싶다, 할리퀸 연기하는 레이디 가가...
자막 기계도 빌렸다. 신기하더라. 물가나 음식이나 이런 거 생각하면 한국이 낫지 싶다가도 문득문득 이런 순간에 캐나다가 진짜 살기 좋은 나라인 걸 실감한다. 아무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대사량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고 대사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스타일도 아닌데다가 대사 안다고 해서 뭐 대단히 이해도가 높아지는 영화도 아니라 굳이?라는 생각도 했었으나 결론적으로 이 기계를 빌린 것은 캐나다 입국 이래 최고의 선택 3위 안에 듦. 자막 있으니까 이해가 아주 잘 되더라 ㅋㅋㅋ
<Kinds of Kindness> 후기. 스포 있음. 많지는 않음.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n번째 장편 영화. 감독의 이전 작품을 생각해보면, <더 랍스터>는 흥미롭지만 재미없었고, <킬링 디어>는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가여운 것들>은 보다가 토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어떨까? 아직 국내 개봉 계획이 없고 일단 2024 부국제에서만 공개될 듯.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리뷰를 쓴 사람이 딱히 없다. 외국 리뷰나 비평 번역이 간헐적으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닐 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 잘 만든 영화. 정말 잘 만든 영화. 정말 너무너무너무. 음악, 음향 무척 좋다. 연기, 정말 좋다. 화면 구성과 배치가 강박적으로 정확하게 의도되었다는 것이 나 같은 알못에게도 느껴질 정도. 왜 그 장면에서 얼굴이 가려져 있는지, 왜 그 장면에서는 화면의 중심에 있고 왜 그 장면에서는 화면의 외곽에 있는지, 분명 비유적인데 직관적이다.
줄거리 측면을 보자면, 영화는 표면적으로 '친절함'같은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전혀 친절하지 않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친절함'이라고 착각하거나 보여질 수도 있는 어떤 인간 밑바닥의 감정과 행동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충성하는 마음일 수도, 충성하는 누군가를 달래는 마음일 수도,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믿을 수 있는 마음일 수도, 믿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내는 마음일 수도. 이런 마음들이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로 연출되고, 그 과정은 하나의 동일한 인물 그리고 동일한 배우들이 맡은 서로 다른 역할들로 아주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배우들로 다른 역할을 연기하게끔 하는 것은 관계의 전복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한다. 옴니버스별 엔딩도 좋아. 될 대로 돼라 식으로 끝냈지만 어떻게 보면 참 명료한 엔딩들.
옴니버스의 매력이 무척 잘 살아있다. 1부에서 나왔던 행동, 대사, 표현법, 장면, 소품이 2부, 3부에서 반복된다. 그 점이 불쾌한 사건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든다. 특히 3부의 리듬감과 편집점, 너무 굿. 색감, 연출, 너무 세련됐어. 중간에 가끔 나오는 흑백 장면이나 무음 장면은 무척 화려한 영화 속에서 더 빛이 난다. 각 부가 끝나고 올라오는 칼라풀한 엔딩 크레딧, 유머러스하다. 이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하는 현대 배경의 작품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거리감이 살짝 있을 수도 있는데, 각 장면 별로 나름의 장치를 사용해서(옛날 음악을 사용한다든가 클래식한 영화의 장면을 오마주한다든가) 계속 고전의 느낌을 내려고 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논란거리 중 하나는 역시 수위? 여배우가 지나치게 혹사당한다, 강간/카니발/사이비/자해 등 자극적인 소재가 반복된다는 평이 종종 보인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여자를 너무 벗기고 여자를 너무 죽여, 배우 학대야"라는 후기가 올라왔고, 그 캡쳐짤이 다른 커뮤니티에 여기저기 퍼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관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린 것도 보았다. 조심스레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다소 편협한 시선. 이 정도의 묘사나 수위면 영화 전개에 '불필요하다'라고 언급할 정도는 아니며, 이 정도에 '여자를 괴롭힌다'는 식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여자의 몸이나 권리를 지나치게 성역화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정도면 <가여운 것들>에서 욕을 많이 먹고 좀 사린 거 아닌가 싶은데. 가여운 것들의 비판점에 대해서는 나도 무척 동의한다. 영화 다 보고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만든 건지 궁금했다. 물론 자꾸 죽고 피 보고 괴롭힘 당하는 것이 여자 캐릭터로 제한된 것은 맞고 불만이나 의구심을 품는 것도 합리적인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 초점을 두고 분개할 만큼 조잡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 아 물론 기분 나쁜 포인트는 있긴 했다. 딱히 웃기라고 넣은 것이 아닌 섹스씬에서 남자 관객들끼리 깔깔대는 거 보고 이거 너네만 이해하는 유머 코드임? ㅋㅋ 어련들 하센 싶었다.
제목은 아마 원제 그대로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로 들어올 것 같다. 난 영어 원제가 발음 그래도 들어오는 것을 안 좋아하는 편인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이거 마땅히 번역할 길이 없다. 정말 Kinds of Kindness를 내내 이야기하는 영화라... 근데 지금 오는 길에 너무 더워서 내용 좀 까먹었다........ 쓸 말 더 있었는데 기억 안 나기도 하고 솔직히 고백하면 자막 보느라 영상 많이 못 봤다 ㅋㅋ 국내 개봉하면 다시 보고 싶다.
지금 이거 먹으면서 쓰고 있다. 맛있엉. 아무튼 신나는 하루 끝~ 내일은 도서관 갈 거다.
요플레 먹다가 생각나서 덧붙이는 이야기. 왜 이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의 몸이 지나치게 대상화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고 아마 개봉하면 더 점화될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왜 이 영화의 감독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왜 사회의 감각이? 우리의 시선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여자 캐릭터가 괴롭힘 당한다고 언급하긴 했으나 사실 이 영화에는 남자 배우가 자동차에 n번 깔리기도 하고 발가벗은 시체로 나오기도 하며 어떤 남자 배우는 성기도 노출하거든. 하지만 그 장면을 보고 '헉, 남자 캐릭터를 저렇게 쓰다니, 너무해.'라는 생각, 별로 안 하잖아. 그런 지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똑같이 학대당해도 여자가 학대당하면 더 고통스럽고, 똑같이 벗어도 여자가 벗으면 너무 섹슈얼해보여. 같은 상황이더라도 여자/여자 캐릭터/여자 배우에게 우리는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시선.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선이 존재함으로서 작품 내에서 캐릭터의 행동이나 상황이 '여자이기 때문에' 극대화된다. (스포일러) 솔직히 남자가 물 없는 수영장에 뛰어들어봤자 감흥 없었을 것 같고, 셀프로 손가락 잘라봤자 이해는커녕 그 마음이 어쩔? 싶었을 듯. 애초에 남자라면 contaminated 어쩌구랍시고 배 핥는 사이비의 행동이 있을 수가 없음. 남성에게 그러한 역할을 부여하면 추가로 설정해야 하는 '수많은 연출과 맥락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출, 맥락 없이 관객들을 자동 납득시키기 때문에 어쩌면 여성에게 가학적인 연출을 지속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하기 때문에... 쓰다보니 나 약간 성녀 창녀 이분법에 빠져 버린 것 같음. 그러니까 내 말은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관습적인 캐릭터 덕분에 이야기 풀어내기가 편해진다는 거 아니야? 쓰다보니 참 이기적인 생각으로 느껴지는데 그 지점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이야기 끝을 어케 낼지도 모르겟음 생각도 꼬인다 쏘리 ~ ㅎㅎ 담에 정리해보기
+ 침대에 누워있다가 생각나서 추가. 여자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연약함과 약점이 창작자에게는 흥미로운/도움되는 소재일 수밖에 없는 걸지도. 신체적 열세/모성애(의견이 분분이야 하겠지만 나는 모성애가 여자에게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특히 콘텐츠에서는 더욱더)/임신과 유산 같은 것들. 순결? 정조? 이런 것도. 곡선의 유약함 역시 그 이미지에 한 몫 하겠다. 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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