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매일매일이 도파민 과다 상태라 정신이 없음. 밤까지 나돌아 다녔다가는 ㄹㅇ 노트북이랑 카메라 다 잃어버리고 빈털터리로 귀국할 것 같아서 이제부터는 저녁 이후에 숙소에서 쉬려고 결심했다.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당장 이전에 했던 결심들도 지켜진 게 없기 때문이다. (액상과당 음료 안 먹기, 하루에 50달러 이하로 쓰기, 과일 많이 먹기, 조금씩 경제학 공부하기 등)
오늘의 첫 행선지는 Aga Khan. 버스와 지하철과 TTC를 모두 환승해서 가는 꽤 멀고 먼 여정. 숙소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근데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내 손에 노트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헉. 숙소에 두고 왔나? 아니면 버스에 두고 내렸나? 이 생각에 착잡해져서 다시 숙소로 귀환. 책상에 곱게 놓여 있었다. 이런 정신머리 때문에 체력과 시간이 두 배로 쓰였다.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당이 떨어져서...
계획에 없던 팀 홀튼 방문. 더블더블과 팀빗을 주문했다. 아 여기서 해프닝. 가게 들어갈 때 어떤 홈리스가 가게 앞에 있다가 손님 오면 문을 쓱 열어주고 닫아주고 하는데 앞에 사람들이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는 거야. 그래서 나는 땡큐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땡큐라고 했더니 갑자기 나한테 음식도 주문하냐고 묻더라. 감이 빡 옴. 아 고마워하는 사람한테 음식 사달라고 부탁하는 거구나. 그래서 수-수-수-수퍼노바 마냥 아-아-아-아돈스핔 잉글리시 시전함.
아무튼, 더블더블과 팀빗. 일전에 아이스캡과 콜드브루를 마시며 엥, 그냥 싼 맛에 먹는 거지 맛있진 않네 싶었는데 더블더블 먹고 너무 맛있어서 길바닥에서 기절할 뻔했다. 팀빗도 맛있었어. 특히 초콜릿이 굿. 가격도 너무 싸던데 앞으로 더블더블+팀빗 조합으로 많이 먹을 것 같다. 그나저나 매장에서 먹고 있었는데 애프터라이크가 샘플링한 노래가 나와서 반가웠다.
멀고 먼 여정을 거쳐 Aga Khan 도착. 북미 유일의 이슬람 전시관이다. 건물 만듦새가 그저 감탄만 나온다. 구글링을 해보아도 전시 내용은 뒷전이고 모든 글이 건물 찬양하고 있더라. 영화 <다운사이징>에 잠깐 배경으로 나온다는데, 궁금해서 한 번 봐야겠다. (이렇게 좋은 소재로 이렇게 구리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는 평가를 듣는 영화라 안 보던 중이었다.) 밑의 링크는 이 건물에 대한 어떤 분의 블로그 글. 알고 보면 뭐가 좀 더 보인다.
열리는 전시는 이 정도. 도자기 특별 전시와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 크기에 비해 진짜로 전시 규모가 작긴 하더라.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뭐 할 말이 없음. 전날 이슬람 관련 유튜브 영상 보고 간 것으로는 아주 역부족이었다. 아라베스크가 예쁜 것은 잘 알겠다. 다만 전시 이외에 인테리어 소품이나 조명, 의자 같은 것들에 무척 신경쓴 것 같았다.
이슬람 노래로 공연도 하고 있던데 내 취향은 아니어서 몇 곡 듣다가 빠져 나왔다. 사실 행사 기간이라 박물관 전체에서 이슬람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 노래가 다 내 취향이 아님. 어쩌면 너무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계속 신기한 음악 듣다 보니 머리가 살짝 아프고 기운이 없어졌다. 사브리나 카펜터 음악을 들으며 기운을 다시 채우고...
전시 자체는 평범했지만 이날 날씨와 Aga Khan 건물이 너무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았다. 내내 다운타운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정말 하늘과 초목이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이곳에 온 덕분에 실감했다. 진짜 하늘 색깔이 말도 안 돼.
하지만 어쨌든 난 도시가 좋아서, 뭔가 도시의 기운을 채우기 위해 Eaton Centre. 사람들이 그렇게 극찬하는 Real fruit bubble tea의 망고 슬러시를 먹어보았다. (액상과당 안 먹겠다는 계획부터 말이 안 되는 계획이었다.) 진짜 생망고 그 자체라고 너무 맛있다고 하길래 호기심 가득했는데 그냥 평범했다. 굳이?
여기는 kiokii. 조악한 올리브영 혹은 화려한 못된 고양이 느낌. 화장품도 팔고 밀키스도 팔고 액세서리도 팔고 여러모로 일본이랑 한국의 온갖 간식 잡화 모아둔 잡탕이지만 인기는 많은 것인지 사람이 무진장 많았다. 여기서 우리나라에도 없는 과일맛 밀키스도 보고 우리나라에서 본 적 없는 오프라인 조선미녀도 보다.
잠깐 시청. Pride month의 마지막 날이자 Canada day의 전날, 게다가 오늘은 북미 최대의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 여기저기에 온갖 부스와 푸드트럭과 이벤트가 많았다. 팀홀튼은 음료 무료 이벤트. 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사람인데, 팀 홀튼 mango quencher를 공짜로 줘? 벌컥벌컥 고. 한 잔 마시면서 시청 앞 산책하고 구경하고 사진 찍고 놀았다. 넘 재밋엉. 사실 음료는 그저 그랬다. 내 돈 주고 사 먹었으면 큰일 날 뻔.
다시 Eaton Centre. 로비에서 비즈팔찌 만들기 행사를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최근 비즈 어쩌구에 관심이 많았는데 재밌었다. 사부작사부작 만들었는데 아주 흡족스러움.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예쁘다 ㅋㅋ 근데 빡 집중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생각해 보니 오늘 먹은 거 팀빗이랑 커피랑 망고 슬러시랑 망고 에이드 말고는 먹은 거 없잖아.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보충해야지 싶었다.
푸드코트 지나가면서 본 한국음식점. WOW 진짜 사람 많더라. 한식 인기 많구나. 다른 곳은 줄이 그저 그런데 여기만 줄이 꽤 서 있었다. 그.. 국뽕이 아니라 진짜다.
이번에 고른 메뉴는~ THAI 음식이라고 써있긴 한데 그냥 밥 위에 닭고기 올라간 무언가를 시켰다. 맛있었다. 흡족.
근데 밥 먹고 돌아다니다보니까 기운이 정말 많이 빠지더라.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이다. 확실하다. 여행 왔다는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어쨌든 여기도 도시의 주말이다. 게다가 프라이드 퍼레이드 있는 날 이튼 센터라니, 여의도 불꽃축제 있는 날 더현대 가는 꼴이로구나. 어쩐지 그렇게 먹고 놀아도 피곤하더라. 그래서 원래 보려고 했던 프라이드 퍼레이드나 불꽃놀이 다 패스하고 그냥 서점만 들렀다가 집에 가려고 했다.
집 가는 길. Eaton centre에서 역사로 빠져나오면 들어오게 되는 이 건물, 처음 캐나다 왔을 때 들어왔던 건물인데 그때와는 달라 보이는 게 신기하다. 이젠 LCBO가 주류를 파는 가게라는 것을 알고 Rexall이 드럭스토어라는 것을 안다. 빠르게 밖으로 나가고 싶으면 건물 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의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지리와 위치가 눈에 익는 이 과정이 너무 재밌고 좋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빠르게 건물을 나왔는데...
갑자기 눈 앞에 퍼레이드가 펼쳐짐. ㅋㅋ 어지간히 크다고 하더니 진짜 다운타운 전역에서 열리는구나. 보고 싶었지만 체력 이슈로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게 되었다. 행운! 북미 최대의 프라이드 퍼레이드! 이런 거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6월 말부터 8월 초로 잡은 일정이었는데 정말 좋은 시기에 온 것 같다.
처음에는 단순히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유관 단체 사람들만 나와서 참여하는 줄 알았는데, 인근에 있는 유명 브랜드나 공공기관에서도 많이들 나오는 것 같다. 맥, 세포라, 이런 코스메틱 브랜드에서도 나오고 H&M도 있고 공공 도서관이나 토론토 동물원에서도 사람들이 왔더라. 브랜드는 그렇다 쳐도 공공기관에서 온 행렬은 꽤 놀랐다. 새삼 이 나라는 퀴어의 개념이 정치 성향, 사회적 통념, 이런 것들과 분리되어 존중받고 있구나 느낌. 사실 퍼레이드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 진짜 많이 했는데 개피곤해서 못쓰겠음 sorry
The ordinary라는 브랜드팀이 이런 걸 뿌렸다. 사진 배경에 나눠주고 있는 아저씨 보이지? 펜스 앞 잡고 구경하길 잘했다 ㅋㅋ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공홈에서 12달러에 파는 수분 보충 세럼. 내가 쓸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신난다. (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니까) 이것뿐만 아니라 생수도 받고 맥 할인쿠폰도 받았다. 이래저래 행사는 이런 재미지. 나중에 내가 행사를 기획하는 날이 온다면 이런 것도 신경 쓰고 싶다.
원래의 목적지였던 서점, BMV. Books, Magazines, Videos 줄여서 BMV인가보다. 귀여워 ㅋㅋ 우리로 따지면 책잡지오 같은 느낌? 중고 서점의 성격이 강한데 책도 무척 깔끔하고 오래된 비디오랑 잡지도 많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Mystery ? ? ? ㅋㅋ 귀여워 진짜 미스터리해보인다.
사고 싶은 책도 찜콩. 출국 전에 예산이 남으면 사야지. (이 기세라면 안 남아도 살 것 같다.)
그리고 또 식료품점 방문. 오늘은 Healthy Planet이라는 가게이다. 비건/유기농/친환경이라는 무척 뚜렷한 컨셉을 가지고 있고, 백화점 식품관을 떠올리게 할 만큼 디피 깔끔, 제품 다양. 영양제 매대도 굉장히 잘 되어 있어서 여기서 영양제 사가도 좋을 것 같다. 아직 기운이 없어서 영양제 쪽은 알아보질 않았다.
가게 무진장 깔끔하지. 대로변에 있는데다가 가격도 꽤 있는 편이라 그런지 몰라도 사람은 없다 ㅋㅋ... 그렇지만 여기서 처음 보는 품목의 물건도 많아서 선물용으로 이것저것 사기 좋을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오기. 직원도 무척 친절하다.
약 $8의 거금을 들여 구입한 Matcha Protein shake. 초콜릿/바닐라/녹차 중에 녹차를 골랐다. Rich, Creamy, Delicious라는 키워드를 보고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쓰면서 먹고 있다. 소신 후기: 담백하고 크리미한 것이 맛있음. 근데 말차 라떼 생각하면 오산. 게다가 두유가 들어있는 것인지, 두유를 먹으면 으레 나타나는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서 아쉽. 하지만 초콜릿 맛이 궁금하다.
돌아와서 짐 정리하고 쉬다가 잠깐 외출. 돌아오는 길에 켄싱턴 마켓에서 공연을 잠시 보았다. 불쇼는 물론이고 옆에서 재즈 공연도 같이 하는데 이게 토론토의 여름이구나 싶었다.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오죽했으면 옆의 담배 냄새가 낭만으로 느껴질 정도.(지금 생각해보면 돌앗나;; 아직도 목이 칼칼하다) 이렇게 일상에서 즐기는 공연이 많은 것도, 같이 즐기고 환호하는 관객들이 많은 것도, 이 분위기가 진짜 좋다.
오전에 주문해둔 Too good to go 음식 픽업. 마감 직전의 가게에서 남은 음식들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어플인데, 며칠 내내 결제가 안 되어서 못 쓰고 있다가 드디어 오늘 아침에 성공해서 받아보았다. 근데 조금 실망.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어플로 이용했을 때는 진짜 혜자였는데 여기는 생각보다 그저 그렇네. 나중에 자세하게 포스팅할 예정이라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 내일 아침 겸 점심으로 먹어야겠다.
와 그나저나 이틀 전에 산 딸기 마저 먹고 있는데 진짜 맛없다. 진짜 싼 게 비지떡. 맛없는 딸기에도 비타민C는 있겠지? 이렇게 과일 안 먹다가는 괴혈병 걸릴 수도 있으니까 일단 먹기는 하는데 너무 불만족스럽다. 다음부터 과일은 비싼 걸로.
오늘 좀 피곤해서 글이 성의가 없네. 내일은 회복의 날. 진짜 달라라마만 가고 집이랑 카페에서 쉴 거다. Bye.